[촌(村), 새 삶을 열다] “마음의 상처 품어주는 ‘엄마의 땅’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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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2-14 17:32 조회3,2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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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 새 삶을 열다] “마음의 상처 품어주는 ‘엄마의 땅’으로 오세요”
- 원예치유체험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양숙씨.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향긋한 꽃차와 함께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도와준다.
[촌(村), 새 삶을 열다] 원예치유체험농원 운영하는 나양숙씨 <전남 보성>
삶의 위기로 불거진 마음의 상처 심리치료 배우며 근본 원인 찾아내
같은 상처 입은 사람들 치유하고자 귀향 후 ‘원예치유체험농원’ 열어
체험객들, 자연 속에서 여유 찾고 각자 사연 말·글로 표현하도록 도와
더 나아가 마을 환경 치유에도 앞장 농촌체험휴양마을 조성 계획 세워
“아유~ 엄마, 어디가쇼잉?”
나양숙씨(59)가 지나가자 조용한 전남 보성군 벌교읍 마동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만나는 할머니마다 ‘엄마’라고 부르며 안부를 건네는 그의 싹싹함에 어르신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주민들과 친근한 모습이 영락없는 마을 토박이 같지만, 사실 그는 7년 전 이곳에 정착한 귀농인이다.
보성이 고향인 그는 줄곧 마동마을 옆 동네에 살다 열세살 때부터 서울살이를 했다. 귀농하기 전엔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10년 넘게 웨딩드레스숍을 운영했다. 1990년대는 웨딩드레스숍이 한참 호황일 때라 사업이 꽤 잘됐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그 역시 불황을 맞았다. 결국 몇년을 버티다 사업을 정리하게 됐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정불화까지 겪으면서 감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치유가 절실했던 그는 스스로 길을 찾기 시작했고,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기독교심리상담 과정을 밟아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심리치료 공부를 하면서 그는 그간 어지러웠던 심리 상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뜻밖에도 ‘엄마’였다.
“첫돌이 지난 후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한 엄마가 목숨을 끊었다는 걸 다섯살 때쯤 알게 됐죠. 그 충격과 엄마 없이 외롭게 자란 세월이 가슴 깊숙한 곳에 응어리져 있었던 거예요. 평생 그걸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심리상담을 하고, 맘껏 울면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어요.”
심리치료를 접한 후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화려하지만 치열했던 도시생활을 접고 엄마가 잠들어 있는 고향 땅에서 평온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또 그곳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 치유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리학 못지않게 식물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원예치료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2011년 보성으로 내려와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을 열었다.
2만3140㎡(7000평) 규모의 밭에 매실과 동국(冬菊) 등을 키우는 그의 농원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그는 체험객들이 꽃을 심거나 따며 자연을 느끼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함께 꽃차를 마시며 각자의 사연을 말이나 글로 허심탄회하게 쏟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
매사에 열정이 넘치는 그는 마음뿐만 아니라 마을을 치유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노후화가 심각한 마을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 공모사업인 ‘새뜰마을사업’을 신청하고 선정되기까지 주요한 역할을 한 것. 을씨년스러운 빈집부터 재래식 화장실, 낡은 담장 등 마을엔 손봐야 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그는 새뜰마을사업신청서를 내기 위해 집집마다 다니며 주거환경 전수조사를 했다. 군청에서 마을 개선사업의 필요성을 알리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마침내 마동마을이 사업에 선정됐고, 올해말 완공을 목표로 2017년부터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다.
“며칠 전에 한 어르신이 ‘참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변화하는 마을환경을 보고 좋아하시니 뿌듯해요.”
마을 사무장직을 맡은 그는 요즘 활기 넘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농촌체험휴양마을 조성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앞으로 마을 안 버려진 땅에 국화를 가꾸고 국화 가공품을 생산하는 등 국화를 테마로 한 ‘벌교국화마을’을 만들 생각이다. 원예치유 같은 체험도 마을사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벌교읍을 돌면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엄마 정이 그리워선지 그때 만나는 할머니들과 살을 부비면서 큰 위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서로 당신도 안아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만큼이나 외로우셨던 그분들에게도 위로가 됐던 거죠. 시골살이로 제가 안정을 찾은 것처럼 다른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더불어 삶의 터전인 마을이 발전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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